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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붓잡은 세월 65년

기사승인 2021.02.01  10:4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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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화선지에 먹 적시는 대술 엄형섭 어르신
쓰고 또 쓰고… 추사체에 매료 독자적 서체로

천자문 글귀를 화선지에 옮기는 엄형섭 어르신. 그의 붓에 65년을 이어온 열정이 녹아 있다. ⓒ 무한정보신문

가르쳐주는 이 하나없이 홀로 붓을 잡은 세월이 65년.

대술 송석리 엄형섭(84) 어르신은 항상 배움에 목말랐지만, 학비를 댈 형편이 안 돼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19살 때 산에 올라 3년 동안 붓글씨에 매진했다.

“나무를 베어다가 부엌 한 칸, 방 한 칸짜리 집을 지었어요. 거기서 혼자 공부를 한 거예요. 한글도 쓰다 한문도 쓰다…. 아버지가 한학을 하셨어요. 그걸 보고 쓰는 법을 터득하고. 그렇게 낙서로 시작한 겁니다”

그가 글씨를 쓰는 서실 바닥은 차갑다. 몸과 마음을 깨어있게 하기 위해 일부러 겨울에도 난방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곳에서 매일 두세시간씩 붓에 먹을 적신다.

어린 시절부터 집념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중학생 때, 다리를 다쳐 수개월 동안 학교를 가지 못해 뒤늦게 진도를 따라잡기가 여간 어려운 상황이 됐다. 고등학교 시험을 포기할 수 없었던 엄 어르신은 단칸방을 얻어 당시 반에서 1등하던 친구와 함께 두어시간씩만 자며 밤새 공부했다. 추운 겨울밤엔 이불 속에 전등을 넣어놓고 그 안에서 책을 볼 정도였다고 한다. 한달을 꼬박 그리하고 나니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 집념으로 군에 입대해서도, 대술농협에 취직해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고, 어딜 가나 글씨가 눈에 띄었단다.

“한 번은 농협 충남연수원으로 교육을 받으러 갔어요. 책자에 ‘대술단위농업협동조합 엄형섭’이라고 이름을 썼는데 연수원장이 그걸 보고 잠깐 오라고 하더니 ‘집에서 지필묵 가져와라, 다른 건 됐고 이것만 써라’라고 하대요. 대신 대회 나가면 농협 소속인 걸 밝히고 나가라고요. 그래서 교육받는 3주 동안 글씨만 썼어요”

농협에서 근무한 지 15년여 지났을 즈음, 장기근속자 인사이동에 따라 추사의 고향인 신암농협으로 발령받은 그의 서예인생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붓굴씨와 함께한 지난 날을 회상하는 엄형섭 어르신. ⓒ 무한정보신문

“동료가 같이 가자고 해 방문한 추사고택에서 추사체를 처음 봤습니다. 그때 ‘야 내가 헛공부했다. 왜 저걸 여태 몰랐나’ 했어요. 그날 바로 집에 오자마자 봉급을 가져다가 추사선생이 쓴 병풍을 사 4년 동안 똑같이 쓰는 공부를 했어요” 수십 년 전 일이지만 여전히 벅찬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한다.

추사체는 굵고 가는 필획이 거침없고 글자에서 힘이 넘치는 것이 특징이다. 엄 어르신은 이를 본따 자신만의 서체를 만들었다. 그가 1년 넘게 작업해 완성한 도연명의 ‘귀거래사’ 병풍에 쓰인 글씨들은 문외한이 봐도 자유롭게 뻗어나가면서도 정갈한 내공이 느껴진다. 

추사를 만난 뒤 여러 국제대회에 참가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1997년 유엔 산하 비정부기구인 세계평화교육자협회(IAEWP)가 시상하는 ‘세계평화 아카데미상’을 받는 등 경력을 쌓았다. 서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상장과 메달은 30여점이 넘는다.

큰돈을 벌고 승진시험에 합격하는 것보다 글씨 쓰는 게 더 좋았다는 그가 여든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에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다. 추사체를 공부하고 싶은 이들과 함께 묵향을 나누는 것.

“후계를 양성하지 못한 게 아쉬워요. 누구든 관심만 있다면 내가 배우고 익힌 것을 전수해주고 싶어요. 그러면 한이 없을 것 같아요”

추사의 고향에서 평생을 붓글씨에 몰두해온 그의 지치지 않는 열정에 ‘묵향’이 은은하다.

김수로 기자 srgreen19@yesm.kr

<저작권자 © 예산뉴스 무한정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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