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ad39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광복이후 반백년간 관선군수시대
1995년 첫 지방선거 민선1기 출범

기사승인 2020.11.16  10:28:32

공유
default_news_ad2

- 예산군 ‘지방자치’ 30년사 ❷

1995년, 광복이후 반백년을 이어오던 ‘관선군수시대’가 막을 내렸다.

6월 27일 기초·광역지방자치단체장과 기초·광역의원을 선출하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치른 뒤 중앙정부가 임명한 관료들이 떠나고, 7월 1일 주민들이 직접 뽑은 ‘민선1기’가 탄생했다.

예산군도 1대부터 37대까지 관선군수다. 이 기간 내무부와 충남도, 대전시 등에서 근무하던 4급 서기관이 내려와 돌아가며 1~2년 가량 군수를 맡았다.

초대 민선군수는 33대 관선군수를 지낸 권오창(38·39대) 전 군수다. 그는 4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선해 민선2기까지 연임했다. 민선3기 박종순(40대) 전 군수는 30·34대 관선군수를 역임했고, 민선4·5기 최승우(41·42대) 전 군수와 민선6·7기 황선봉(43·44) 현 군수로 25년을 이어왔다.

전체적으로 공무원 출신 3명과 군인 출신 1명이며, 정당은 △자유민주연합-권오창 △국민의힘(옛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박종순, 최승우, 황선봉 △자유선진당-최승우다.

일곱 번의 선거에 모두 21명이 출마해 평균 3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또 도지사와 군·도의원 등 다른 지방선거와 달리 내리 보수정당이 당선했고, 진보정당은 단 한 차례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첫 선거는 유권자 7만8174명 가운데 5만8555명(74.9%)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 대통령선거 부럽지 않게 투표율이 높았다. 하지만 △2회-63.0% △3회-58.9% △4회-60.9% △5회-61.6% △6회-61.2% △7회-62.6% 등 그 뒤로는 급격하게 관심이 식어 60% 안팎으로 떨어졌다.

지방자치의 시작인 주민들의 선거참여와 선거가 끝난 뒤 둘로 셋으로 갈라진 민심을 통합하는 것은 풀어야할 숙제다. 또 군수 재직기간 차기를 노려 표밭을 다지기 위한 선심성 행정과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공무원들을 줄 세우거나 스스로 줄을 서는 문화 등은 부작용으로 지적받고 있다.

군조직은 얼마나 변했을까? 지자체장 의지와 지역특성, 역점사업 등에 따라 행정기구가 달라진 것이 특징이다.

예산군은 △1995년-2실14과·1의회·2직속기관·2관리사무소·1사업소·2읍10면→△2020년-2국·1담당관14과·1의회사무과·2직속기관·3사업소·2읍10면, 정원은 737명→805명으로 변했다. 지금은 낯선 문화공보실, 내무과, 사회진흥과, 민방위과, 농촌지도소, 위생환경사업소 등이 눈길을 끈다.

행정구역은 내포신도시가 들어서고 아파트 건설 등으로 분구(分區)가 이뤄져 177개 법정리는 그대로지만 행정리(289→315)와 반(1133→1244)은 증가했다. 안타깝게도, 지방자치의 주체인 주민 수(인구)는 3만4207명(1995년 11만4655명→2020년 9월 8만448명)이나 감소했다. 핵가족화 등의 영향을 받은 세대수는 3만874→3만8846세대다.

김동근 기자 dk1hero@yesm.kr

<저작권자 © 예산뉴스 무한정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예산군 읍·면 뉴/스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