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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거주(居住)를 위하여

기사승인 2020.10.26  13:4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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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은 주거지가 반 별로 멀리 떨어져 형성되어 있다. 그런 이유로 마을화단 가꾸기 등 특별한 일이 없으면 다른 반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소통할 기회가 적다.

마을공동체의 구성원들도 토착 농업인부터 귀농(촌)인, 직장인까지 함께 사는 만큼, 주거형태도 단독주택, 아파트, 다세대주택 그리고 단독형 타운하우스까지 다양하다. 마을공동체가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는데 고민이 있어 보인다.

거주와 관련하여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곳은 다세대주택에 사는 사람들이다. 공동주택의 ‘거주’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쓰레기처리, 주차장 사용 등 ‘공동관리’가 필요한 부분이다.

문제는 늘 경계에서 발생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마을의 다세대주택은 관리주체가 분명치 않아 한 때 환경오염으로 연결될 수 있는 쓰레기 대란(?)이 발생한 적이 있었다.

‘옥사모(옥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의 적극적인 중재와 솔선수범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은 자치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거주자가 바뀔 경우 언제든지 같은 문제가 재연될 수 있다. 이렇듯 빼어난 존재자인 인간도 이웃으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가 보다!

“‘거주’란 그저 ‘살게 된 집(Lived house)’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시간과 공간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그 내용과 의미를 문제 삼아야 하고, 같은 이유로 자신의 정체성(내가 누구인가? 우리가 사는 삶이 무엇인가?)과 맞닿아 있다.”

거주는 생활 속에서 자동차, 식탁, 쓰레기수거함, 식물 등의 사물과 함께 할 때 얻어지는 것이다. 시인 횔덜린은 “인간은 대지 위에 시적(詩的)으로 거주한다.”라고 했다. 여기서 시적이라는 말은 지상에 존재하는 작은 풀 한 포기에서도 사물의 성스러움을 경험하고 경이로운 근본기분을 느낄 때, 우리는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 이 땅에 거주하는 것이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집을 짓는 것이 곧 존재하는 것인 만큼, 우리가 사는 집과 삶(생활)이 일치할 수 있도록 거주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어린 시절 친구와 함께 하던 소꿉놀이도 거주를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조선시대 농촌지역에 마을단위로 ‘두레’라는 조직이 있었는데, 공동체적 삶의 관계망을 형성하는 것으로 딱히 ‘함께 거주하기’를 목표로 만들어진 시스템은 아니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학교생활(남자의 경우 군대생활 포함)을 통하여 공동생활을 체험하지만, 이것 역시 집이 아닌 장소에서의 집단적 경험일 뿐, 이웃과 ‘함께 거주하기’를 학습한 것은 아니다.

‘거주하는 방법’은 프로그램에 따라 단기간에 집중하여 배울 수 없다. 그것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아주 중요한 일이지만, 체계적으로 가르쳐주는 곳이 없는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따라서 가정에서 어릴 때부터 자녀들을 꾸준히 가르쳐서 습관을 들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부모들이 어린 자녀들에게 평소 생활 속에서 모범을 보이고, 때로 적극적으로 훈육하는 방식의 가정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그리고 다른 접근방법의 하나로 인근의 휴경 중인 작은 농지를 빌려 거주자들이 먹거리를 매개로 ‘공동텃밭’을 일구면서 서로 소통하는 가운데, 아름답게 거주하는 방법을 체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백화 <덕산면 옥계리> yes@yesm.kr

<저작권자 © 예산뉴스 무한정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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