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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글방 ‘오치서숙’ 터 고증

기사승인 2020.10.12  10:5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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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주록 문하서 5년간 수학… 군, 역사·의미 재조명 나서

덕산 둔2리에 있는 ‘오치서숙’의 터. ⓒ 무한정보신문

매헌 윤봉길 의사가 1919년 12세의 나이로 일제식민지교육을 거부하고 덕산공립보통학교를 자퇴한 뒤 향한 곳, ‘오치서숙(烏峙書塾)’이다.

그는 이곳에서 1921년부터 1925년까지 성삼문 후손인 유학자 고(故) 매곡(梅谷) 성주록 선생 문하생으로 사서삼경, 한시, 한학을 공부했다. 1926년 서숙생활을 마친 후에는 농촌부흥에 전력했고, 야학회를 조직해 청소년을 가르치다 1930년 ‘장부출가생불환’이라는 신념이 가득찬 편지를 남기고 중국으로 향했다.

최근 윤봉길의사기념관 현지 조사와 증언을 통해 오치서숙 터를 고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앞으로 윤 의사에게 독립운동사상을 심어준 오치서숙과 스승 성주록 선생을 재조명하는 연구가 이어질 전망이어서 주목된다.

군에 따르면 오치서숙은 ‘까마귀 고개에 공부하는 숙소’라는 뜻으로 ‘가마고개’ 지명에서 유래했다. 후학 70여명을 양성했던 그곳은 아쉽게도 현재 터만 남았다.

그동안 덕산 ‘둔1리 둔지미 1길’에 있었다고 알려져 왔지만, 1달여 전 성주록 선생 제자 맹화섭(90) 선생과 성주록 선생 손자 성낙호씨 증언, 위성사진 자료와 현지조사를 통해 원래 위치가 ‘둔2리 노곡길 16’인 것으로 확인했다.

맹화섭(90) 선생은 생존하는 성주록 선생 마지막 제자로 17세 때부터 오치서숙에서 수학했다. 그는 “오치서숙 본래 자리는 가마고개 인근 맹교원 선생이 거주하던 집”이라고 증언했으며 “스승을 통해 윤의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자주 접했다. 성주록 선생은 순수 학문 뿐만이 아니라 민족의 문제를 고민했다. 홍주의병장 김복한의 사상을 높이 숭상해 윤 의사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영향을 줬다”고 전했다.

김민섭 학예사는 이와 관련해 “성주록 선생은 당시 지역 인사였고 홍성과 내포지역 등 교류가 많았으며, 윤 의사는 오치서숙을 통해 임시정부 등 독립운동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입수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그것이 중국으로 향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추정한다”며 “오치서숙과 성주록 선생의 의미를 재조명해 꾸준히 연구할 필요성이 있다. 앞으로 차근히 풀어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김두레 기자 dure1@yesm.kr

<저작권자 © 예산뉴스 무한정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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