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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잃은 운동화, 평화공원서 주인 찾다

기사승인 2020.07.06  13: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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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이언 뉴스>

<무한정보>가 속한 충남지역 풀뿌리언론 연대모임인 <충남지역언론연합>이 오피니언뉴스를 새롭게 선보입니다. 오피니언뉴스는 우리 사회 주요 현안에 대한 열린 시각, 뉴스가 있는 칼럼을 지향합니다. 이번에 새로 모신 칼럼진들은 충남지역 각계 전문가로서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해온 분들입니다. <충남지역언론연합>은 앞으로도 부족한 분야를 채워줄 수 있는 칼럼니스트들을 계속 초대함으로써, 내용과 형식이 더욱 풍성해지도록 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주인을 잃은 채 참사의 현장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운동화 한 짝! 그 운동화를 모티브로 한 평화공원이 시민의 힘으로 세워졌다. 18년 전 미군 궤도차량에 처참히 희생된 여중생 신효순, 심미선 양(15세)을 영원히 기억하고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청산하자고 다짐하는 평화공원이 건립된 것이다.

비극의 2002년 6월 13일, 사건은 미2사단 궤도차량(56톤)이 맞은편에서 오던 미군 브래들리 장갑차와 무모하게 교차운행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미군은 차폭이 도로폭보다 넓은 차량의 교차운행을 금지하는 한국의 도로교통법(14조 3항)과 미군 훈련 교범을 무시했다. 주민에게 알리는 등의 안전조치도 전혀 취하지 않았다.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미선이와 화가가 되고 싶었던 효순이의 꿈이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효순·미선사건 백만 서명에도 ‘무죄’

사건 직후 시민단체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은 현장으로 달려가 사고 사진과 관련자 증언을 확보했다. 이는 단순 교통사고로 축소·은폐하려는 한미당국의 기도에 맞서 진상을 밝히는 토대가 되었다.

월드컵 4강전이 열리던 날에는 여중생 영정 사진과 “우리도 응원하고 싶어요”라는 구호가 담긴 피켓을 들고 광화문의 수십만 인파 속으로 들어가 사건의 진상을 알렸다. 이를 계기로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사진전과 서명운동이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한미소파)은 주한미군이 공무 중 일으킨 범죄에 대해 미군이 1차적 재판권을 갖지만 한국 정부가 재판권 이양을 요청하면 “호의적 고려를 해야 한다”(한미소파 22조 3항)고 규정하고 있다.

유족과 시민사회단체는 100만명이 넘는 국민 서명에 힘입어 미군에 대한 재판권을 한국에 넘길 것을 요구했다. 이에 한국 법무부는 사상 최초로 미군에 재판권 포기를 요청했다.

그러나 미군은 “전례가 없다”며 끝내 재판권 이양을 거부했다. 미군은 판사, 검사, 변호사, 배심원까지 모두 미군으로 구성된 미 군사법원에서 통신병 페르난도 니노와 운전병 마크 워커에게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 후 5일 만에 미군들은 유유히 본국으로 돌아갔다.

죽은 자는 있으나 죽인 자는 없는 기만적인 재판 결과를 본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시민들은 “아무도 죄가 없다면 탱크라도 구속하라”는 피켓을 들고 촛불시위에 나섰다. 12월 14일, 서울시청광장에 모인 10만여 명의 시민들은 사상 최초로 미 대사관을 에워싸 미국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수십 개 나라에서도 촛불이 뜨겁게 타올랐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도 촛불집회에 힘입은 것이었다.

연인원 수백만 명이 참가한 촛불집회에도 불구하고 진상이 밝혀지지 않자 유족과 평통사는 정보공개 소송 끝에 1천여 쪽에 이르는 의정부지검의 수사기록을 확보했다. 기록 검토 결과 궤도차량 운전병 마크 워커가 두 여중생을 볼 수 있었고, 운전병과 통신병 사이에 통신 장애가 없었다는 결정적인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운전병은 두 여중생을 보지 못했고, 통신병은 두 여중생을 발견하고 정지신호를 보냈으나 통신장비 고장으로 운전병이 듣지 못했으므로 무죄라는 미군 법원의 판결이 거짓이었음을 밝혀낸 것이다.


남은 과제는 ‘자주·평화·통일’

사고 후 현장에는 “불의의 사고”라고 적힌 기만적인 미군 추모비가 세워졌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우리의 손으로 추모비를 세우자는 데 마음을 모으고 2012년 추모비 ‘소녀의 꿈’을 제작했다.

하지만 거처를 찾지 못한 추모비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교육원(서울시 서대문구) 마당에 세워 두었다가 매년 추모제 때마다 트럭에 실려 사고현장을 오갔다. 2017년 사고현장 바로 위에 추모비를 세울 평화공원 부지를 마련한 데 이어, 2020년 18주기 추모제 때 마침내 효순미선 평화공원을 완공하였다.

평화공원은 청소년 평화교육의 장으로 꾸몄다. 행사에 참가한 신현수 선생(신효순 아버님)은 “공원을 만들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됩니다”라며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미선·효순 촛불은 두 여중생의 한을 풀고 평등한 한미관계를 바라는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투쟁에 나서 자주·평화운동의 대중적 지평을 연 역사적 운동이다. 촛불집회의 효시이기도 하다. 미선·효순이 아름다운 투쟁의 방법을 알려주고 간 것이다. 당시 요구했던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미국 사죄, 한미소파 개정의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두 여중생 압사 사건은 불평등한 한미관계의 상징이다. 미국의 터무니없는 방위비분담금 요구나 남북관계 통제 등에서 보듯이 오늘날까지도 한미관계는 여전히 불평등하다. 미선·효순 촛불은 평등한 한미관계를 수립하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이룰 때 비로소 완성된다.

미선·효순이가 자주, 평화, 통일의 꿈으로 다시 피어나도록 싸워야 할 과제가 우리 앞에 남아있다.

유영재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위원> yes@yesm.kr

<저작권자 © 예산뉴스 무한정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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