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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뜨기는 죄가 없다

기사승인 2020.06.15  11:4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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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 신부의 예산살이, 낡음에서 빛을 보다>

악마가 보낸 잡초, 나는 그렇게 불렀다. 예산살이와 함께 시작된 풀 뽑기 작업, 이 악마의 풀과 씨름하며 두 해를 보내고 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봄에 땅에서 올라온 포자들이 뱀 머리를 닮아 살짝 수상쩍긴 했다. 그러더니 웬걸 온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번식력도 대단하지만 어지간히 살기 힘든 유치원 모래놀이터에도 땅 속 깊이 뿌리를 박고 수북이 피어난다. 민들레도 씀바귀도 울고 갈 극강 생존력이다.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 질 무렵,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 놈들아 맛 좀 보거라”

현대문명이 선물해준 제초제를 손에 들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얼마 뒤 고개를 숙이고 말라죽어가는 녀석들의 모습에 승리의 찬가를 불렀다. 그것이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름 장마가 지나자 다시 무수히 올라오는 녀석들의 반격에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아마 이 놈들은 지하에 재난대책본부를 두고 있는 게 틀림없어. 그렇지 않고서야 이리도 잘 자랄까”

뿌리가 깊어 원천 박멸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을 즈음, 그냥 뒀다 호미질로 뽑아주는 것으로 양자 간 휴전을 선언했다. 전용 제초제도 있다는데 땅 속 지렁이들을 생각하니 할 짓이 아니었다. 독가스 살포는 좀 야비하지 않은가.

ⓒ 박봉서

그 풀이 쇠뜨기라 한다. 왠지 익숙한 이름이다. 어릴 적 우리 집은 늘 소를 키웠다. 방과 후 저녁 무렵 소가 쉬는 날이면 들로 데리고 가 꼴을 먹이곤 했다. 풀이 있는 곳에 소를 몰고 가기만 하면 되는 쉬운 일이다. 그런데 소가 모든 풀을 다 먹는 것은 아니었다. 나처럼 학교도 안다니는데 긴 혀를 낼름대며 먹을 수 있는 풀만 뜯는다는 걸 알았다. 이 쇠뜨기가 소가 아주 좋아하는 풀이라고 한다. 고삐를 쥐고 소 궁댕이만 쳐다봤으니 알 턱이 없었던 게지.

촌스러운 듯 정겨운 이름 쇠뜨기. 화려한 꽃 한 송이 피우지 않는 풀이지만 말려서 약으로도 쓰일 만큼 쓰임새가 좋은 풀이기도 하다. 어쩌면 토속적인 이름만큼이나 이 땅에서 살아온 백성들을 닮았다. 질긴 생명력으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모습은 온갖 침략에도 굿굿하게 살아온 반도의 백성들과 잘 어울린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의 백성들을 민초(民草)라 부른다. 질긴 생명력을 가진 잡초처럼 살아가는 백성을 의미할 때 쓰는 말이다.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 있는 6월 항쟁 기념 표지석. 1987년 6월 10일 명동성당이 전경들로 막히자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성공회 서울주교좌 성당에서 ‘호헌철폐 국민대회’를 개최하며 6·10 민주화운동이 시작되었다.

녹음이 짙어가는 6월이다. 4·19로 시작된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은 5·18 광주를 넘어 87년 6월의 거리에서 꽃을 피웠다. 대성당의 타종소리에 맞춰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거리로 뛰어나온 수많은 민초들의 함성은 급기야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냈다.

대통령을 체육관이 아닌 국민이 직접 뽑아야 한다는 당연한 상식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쓰러지고 사라져야 했던가. 서울시청 앞 성공회 성당을 다녀 올 때면 성당 뒤편 6월 항쟁 표지석에 잠시 머물다온다.

미국에서는 한 흑인의 사망으로 분노한 시민들의 시위가 들풀처럼 번지고 있다. 쇠뜨기를 뽑으며 생각한다. 33년 전, 보잘 것 없어 보이던 이 땅 민초들의 위대한 반격을, 제초제 같은 최루탄과 뽑히고 뜯기듯 감금과 고문으로도 죽지 않은 정의를 향한 그 열망을.

밟고 쓰러뜨려도 다시 일어나는 이 땅의 백성들, 바로 우리 모두가 위대한 쇠뜨기다. 백성들은 죄가 없다. 쇠뜨기도 죄가 없다.

심규용 <예산성공회> yes@yesm.kr

<저작권자 © 예산뉴스 무한정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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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전체보기
  • 김덕배 2020-06-15 18:30:22

    흑인폭동이죠 약탈삭제

    • 처음과같이 2020-06-15 13:46:04

      국민들의 민주화의 열망이 거셌던 1987년 6월 당시 저는 경북 문경의 조그만 사립중학교 3학년 학생이었습니다.
      신부님 글을 읽다보니 그때 국어교과 담당 선생님의 시가 생각납니다.
      군대에서 부상을 당해 오른쪽 다리에 살짝 장애가 있으셨던, 30대 초반의 열정적인 분이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잡초
      채인식
      밟고
      뽑고
      그리고
      뿌리까지 캐질지라도
      그래도 살아얀단다.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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