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ad39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명선(茗禪) ⑥

기사승인 2020.03.30  13:40:18

공유
default_news_ad2

- <추사 김정희, 그 낯섦과 들춤 사이>

(도1) 추사 글씨<명선>.

지금까지 <명선(茗禪)>(도1)이 추사의 분명한 작품임을 여러 관점에서 들여다보았다. <명선>이 추사의 작품이 아니라면 추사는 현재의 자리에서 처절하게 내려와야 한다. 허상이었기에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해야 한다. 지금 추사의 자리를 이재 권돈인이나 위작의 주인공으로 대체해야 한다. 물론 권돈인도 글씨를 잘 썼다. 추사의 영향을 받았기에 핍진하게도 썼다. 하지만 추사와 비교하는 것은 큰 무리가 있다.

앞에서 이영재·이용수 부자의 《추사진묵》(2008년 《추사정혼》이라고 책 이름을 바꾸어 출간)이란 책은 오류가 너무 많다고 이야기했다. 추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황소개구리 같은 존재로 추사에 대한 연구를 진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란시키고 있다고 했다. 이 책에서는 <명선>을 권돈인의 작품이라고 하고 <계산무진(谿山無盡)>을 추사의 위작이라고 하고 있다. <침계(梣溪)>는 ‘연구작’으로 분류하여 추사의 글씨가 아닌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폐해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위작 주장의 결과

《추사진묵》의 저자 이용수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病居士?’를 ‘병거사관’으로 잘못 읽고 있다. ‘?’를 ‘款’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영재·이용수 부자가 출간한 《추사진묵》이라는 책에서는 서체에 대한 이해 부족이 드러나거니와 이처럼 연구에 기본적인 것조차 오독을 하고 있다. 추사가 윤정현에게 써 준 <도덕신선(道德神僊)> 작품에 대해 추사의 진품이 아닌 위작이라고 보고 있다. 획과 관지를 보고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작을 논하기 전에 어처구니없는 것이 있다. ‘선(僊)’ 자와 ‘천(遷)’ 자를 구분하지 못해 <도덕신천>으로 읽고 있다. 이런 오독은 여럿 있다. 하나를 더 들어보면, 추사의 행서 <토성절구(土城截句)>를 권돈인의 글씨라고 보면서 <토성재구(土城載句)>로 읽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 반론을 펼 필요가 있을까 싶다. 추사를 함부로 논하지 말아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명선>은 추사가 40년 지기 초의선사에게 제주로 귀양살이 가기 전에 써 준 글씨이다. <계산무진>과 함께 대작에 속하는 작품으로 왕성한 필력을 보여주는 명작이다. <계산무진>과 마찬가지로 <명선>도 필획과 결구, 그리고 장법에서 추사가 왜 추사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명작이다. 이러한 글씨는 위작으로 나올 수 있는 글씨가 아니다. 그럼에도 <명선> 역시 앞에서 고증한 <계산무진(谿山無盡)>과 함께 작년 ‘진위 논란’으로 보물 지정에서 탈락했다.

<명선>은 추사를 추사이게 한 명작이면서 우리 예술문화사에서 참으로 소중한 가치를 지닌 보배로운 작품이다. 우리 차 문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작품,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금석문을 어떻게 수용하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작품, 필획의 변화 과정을 알 수 있는 작품, 고민과 고심이 담긴 글자의 결구를 어떻게 해결하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정민 교수는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라는 책에서 <신필의 장한 기운, 추사 「명선」 진안변(眞?辨)>이란 제목으로 20쪽에 걸쳐 추사의 글씨임을 설득력 있게 전개했다. 이 글에서 <명선>이 추사의 신필(神筆)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명선’은 추사가 초의를 위해 지어준 별호임과, 1849년 당시까지 <명선>이 추사의 또 다른 대표작 <죽로지실>과 함께 일지암에 보관되고 있음을 증명하였다. 정민 교수는 글을 다음과 같이 맺고 있다.


예술문화사의 보배로운 명작

“추사의 「명선」은 진적이다. 그것도 그만그만한 작품이 아니라, 걸작의 반열에 놓아 조금도 손색이 없는 대표작의 하나다. 「명선」은 최고급 종이에, 흥취를 주체하지 못해 작심하고 쓴 신필이다. 전체 작품이 뿜어내는 장한 기운은 곧장 보는 이를 압도한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우리 차 문화사가 빚어낸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보여준다. 우리 문화사의 보배로운 유물을 아무 근거 없이 가짜로 내모니 어찌 민망한가?”

여러 번에 걸쳐 작년 중국 베이징의 중국미술관에서 열린 『추사 김정희와 청조 문인의 대화전』을 계기로 진위 논란의 소용돌이에 빠진 <명선>과 <계산무진>을 보았다. 두 작품이 추사의 글씨가 아니라는 주장의 중심에 있는 강우방 선생은 위작이 양산되면 무엇보다 우리 문화의 정체를 확립하는데 걸림돌이 될 것이고, 그 위작들이 해외에 소개되면 우리 민족문화가 국제적으로 소외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2007년에 나온 선생의 저서 《어느 미술사가의 편지,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이에게》의 <위작의 범람은 민족문화의 위기>라는 글에서다. 여기서는 추사의 편지와 그림, 김홍도와 강세황의 그림 등 위작이 난무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강우방 선생의 말처럼 위작의 심각성은 자못 크다. 위작은 위작의 대상을 창작한 작가에게는 영혼을 좀 먹게도 한다. 지금도 분명하게 아퀴 짓지 않았지만, 천경자의 <미인도>가 그러한 예다. 위작을 분명하게 가려내야 하는 것은 참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진품을 위작이라고 하면 어떨까? 이에 대해서는 앞에서 <명선>과 <계산무진>이 아주 적절한 예가 될 것이다.

 

(도2) 추사 글씨 <잔서완석루>.

강우방 선생은 이 <위작의 범람은 민족문화의 위기>라는 글에서 추사의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도2)도 위작의 예로 들었다. 획들의 구성이 전혀 짜임새가 없고 획은 견고함을 잃어 푸석푸석해 서법을 전혀 익히지 않은, 붓을 거의 잡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쓴 것이라는 것이다. 아! <잔서완석루>가 이 정도의 글씨라면 도대체 추사를 추사이게 한 글씨는 어떤 것일까? 추사는 예서에서 특별히 명작을 많이 남겼다. 그것도 전서를 가미한 예서. <잔서완석루>는 추사의 그 어느 글씨보다 한문의 각 서체가 버무려진 대걸작이다.

노재준 <서예가, 예산고 교사> yes@yesm.kr

<저작권자 © 예산뉴스 무한정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3
default_nd_ad5
ad37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default_news_ad4
default_nd_ad3

최신기사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예산군 읍·면 뉴/스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