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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외가(檣外家) ③

기사승인 2019.11.04  14: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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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사 김정희, 그 낯섦과 들춤 사이>

(도1) 〈장외가〉 탁본 글씨 .

앞에서 <장외가(檣外家)> 글씨(도1)를 분석하면서 ‘氷(빙)’ 자가 아니라 ‘外(외)’ 자임을 살폈다. 글씨를 더 분석해 보겠다. ‘外(외)’ 자의 왼쪽 ‘夕(석)’ 자는 일반적인 형태와 달리 상하로 간격을 넓게 벌려 썼다. ‘夕(석)’ 자를 이렇게 벌려 쓴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점과 오른쪽의 ‘卜(복)’ 부분의 처리는 ‘氷(빙)’ 자로 읽게 된 이유이다. 그러면 추사는 왜 이렇게 쓴 것일까?


<장외가> 글씨 분석

(도2) 추사 글씨 <명선>, 간송미술관 소장.

예서체의 자형은 일반적으로 세로보다는 가로가 긴 형태이다. 하지만 반대인 경우도 있다. 한예 중 백석신군비(白石神君碑)가 그렇다. <명선(茗禪)>(도2)은 이런 백석신군비의 뜻을 살려 썼다. 이 <장외가> 글씨는 <명선>과 마찬가지로 자형이 세로가 길다. ‘夕(석)’ 자를 위아래로 넓게 벌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무래도 ‘外(외) 자는 가로가 넓어질 수밖에 없는 글자다. 이런 ‘外(외)’ 자를 ‘檣(장)’ 자와 ‘家(가)’ 자의 모습에 맞추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夕(석)’ 자를 이렇게 세로로 넓게 벌려 쓴 것이다.

이 ‘外(외)’ 자를 유심히 보면 눈길이 가는 곳이 있다. ‘卜(복)’의 세로획이다. 이 세로획의 기필(起筆) 부분을 보면 나중에 보필(補筆)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균형을 잡아 주기 위한 것이다. 참으로 ‘外(외)’ 자는 고심이 묻어나는 글자이다. ‘家(가)’ 자에서는 유난히 아래로 처리한 마지막 획인 파임도 눈에 띈다. 전체적인 모습을 고려해 옆으로 처리하지 않은 것이다.

(도3) 장천비에 나오는 ‘嗇(색)’ 자.

‘檣(장)’ 자는 이 글자 자체로는 금석문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글자이다. ‘檣(장)’ 자는 ‘木(목)’ 자와 ‘嗇(색)’ 자로 이루어진 글자이다. 이 ‘嗇(색)’ 자가 들어간 글자가 여럿 있다. 이 ‘嗇(색)’ 자만은 한(漢) 대의 예서 ‘장천비(張遷碑)’(도3)에서 볼 수 있다. 이 장천비는 앞에서 언급한 ‘사신비(史晨碑)’, ‘서협송(西狹頌)’과 마찬가지로 한나라 예서의 명비이다. 장천비의 ‘嗇(색)’ 자 형태를 추사는 응당 기억을 하고 있을 테다.

추사가 이 장천비를 직접 언급한 글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당시 언급하고 있는 인물들을 보면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성해응(成海應, 1760~1839)은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의 ‘제장천비후(題張遷碑後)’라는 글에서 장천비에 대해 상찬하고 있다. 이때도 장천비의 존재는 알려졌다. 그리고 자하(紫霞) 신위(申緯, 1769~1845)는 《경수당전고(警修堂全藁)》에서 ‘탕음령장천비(蕩陰令張遷碑)’란 시를 읊고 있다. 17살 위지만 추사와 막역하게 지낸 신위는 중국을 갔다 오는데 추사의 도움이 있었고, 추사 영향으로 많은 금석문을 접했다.

 

(도4) 추사 글씨 <잔서완석루>.

추사는 여러 서체 중 특별히 예서체에서 많은 명작을 남겼다. 단순한 예서보다 전서와 혼용한 작품이다.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도4)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장외가>에서도 느낄 수 있다. ‘가(家)’ 자의 ‘宀(면)’은 전서의 필획과 결구가 느껴진다. ‘豕(시)’도 오른쪽 필획에서 전서의 필법이 느껴진다. 결구(結構)로 보았을 때 <장외가>는 허술함이 없는 글씨다.


한예와 문화재적 가치

서체에 대해 살펴 본다. <장외가>를 고예(古隷)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거리가 있다. 고예가 아니라 파책이 있는 팔분서의 한예(漢隷)이다. <장외가>는 ‘外(외)’ 자와 ‘가(家)’ 자의 맨끝의 磔(책, 파임)은 한예이다. 앞에서 ‘外(외)’ 자가 나온 ‘사신비’와 ‘서협송’은 팔분서 한예를 대표하는 명비이다.

<장외가>를 그동안 ‘장빙가(檣氷家)’로 읽다 보니 ‘고드름이 열리는 집’이라는 어색한 의미가 되었다. ‘檣(장)’ 자를 ‘墻(장)’과 같은 의미로 보아 ‘담장 밖 집’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檣(장)’ 자를 ‘墻(장)’ 자와 통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장외가>는 글자 그대로 ‘돛대 밖의 집’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장외(檣外)’는 한시에 등장하기도 하는 말이다.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말이다. <장외가>는 한강변에서 떨어진 곳에 있어 이러한 이름이 지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승경지(勝景地)이기에 특별히 이러한 이름이 부여되었을 것이다.

제주 유배에서 풀려난 후 돛단배가 떠다니는 한강변에서 지낼 때, 초대 받은 추사가 방문하여 <장외가>라고 짓고 썼을 가능성이 크다. 《완당선생전집》에는 없지만 《담연재시고》에는 한강변에서 쓴 <원범(遠帆)>이라는 시가 있다. 이러한 상황과 함께 ‘阮堂(완당)’이란 행서체 관지의 글씨는 다른 시기보다 제주 해배 후 한강변에서 생활할 때의 글씨와 많이 닮아 있다.

   
 

 문화재청은 현재 논란이 된 성락원에 대해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원점에서 재평가한다고 한다. 현재의 성락원은 건축학적인 면과 정원으로서의 가치는 사계 전문가에 의해 밝혀지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성락원에는 많은 금석문이 전한다. 모두 시기가 다른 금석문이다. 추사의 귀한 금석문인 <장외가>가 그 중심에 있다. 이것만으로도 문화재로서의 충분한 가치가 있다 하겠다.

올해 《월간 서예문인화》 9월호에서야 추사의 금석문 <장외가> 탁본 글씨가 지면에 공식적으로 처음 등장하였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만시지탄이지만 추사의 새로운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노재준 <서예가, 예산고 교사> yes@yesm.kr

<저작권자 © 예산뉴스 무한정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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