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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남박씨 ②

기사승인 2019.09.30  12: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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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호제 교수와 함께하는 예산의 성씨> - 대흥면 송지·대야리 부윤공파

   
 

예산 지역에 세거한 반남박씨는 대술면 이티리와 화천3리(곰실)의 도정공파(都正公派)[8월 26일자 수록]와 대흥면 송지·대야리의 부윤공파(府尹公派)이다.

대흥면에 세거한 반남박씨는 6세 박은(朴訔, 1370~1422, 자:仰止, 호:釣隱, 左議政, 시호:平度, 외조:牧隱 李穡)의 셋째 아들 박훤(朴萱, 1410~1487, 贈領議政)이 경주부윤(慶州府尹)을 지냈기 때문에 그의 후손들이 ‘부윤공파(府尹公派)’라고 일컫는다.

박훤은 1454년(단종 2) 음사(蔭仕)로 벼슬길에 나아가 진무(鎭撫)가 되었고, 이듬해인 1455년(세조 1) 세조(世祖)를 도와 원종공신 2등에 책록되었다. 1467년(세조 13)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임명된 후 정조하례사(正朝賀禮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이듬해에 귀국하였으며, 1476년(성종 7) 통정대부(通政大夫)로 경주부윤에 임명되었다.

 

박훤의 장남인 8세 박숭문(朴崇文)은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을 지냈고, 숭문의 아들 박계노(朴季老, 丹陽郡守)에게는 아들 박기(朴琦)가 있었으나 무후(無後)하였으므로, 박훤의 아우 박강(朴薑)의 증손자이며 박연(朴堧)의 아들인 박건(朴謇, 利仁道察訪)을 후사(後嗣)로 삼았다.

7세 박훤 이하 10세 박건(朴謇)까지 4위[萱-崇文-季老-謇]의 묘는 본래 경기도 파주시 칠정면(七井面) 적곤리(迪昆里)[현 문산읍 당동리]의 백형 박규(朴葵) 묘 주변에 500여년간 있었으나, 이 지역이 산업단지로 개발되면서 1981년 대흥면 대야리 83-4 텃골 마을회관 뒤 현재의 위치로 이장하였다.

박은의 둘째 아들이자 박훤의 형인 박강(朴薑, ?~1460, 贈左贊成, 시호:世襄)은 1453년(단종 1)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수양대군(首陽大君)을 도와 좌익삼등공신(左翼三等功臣)에 책록되었고, 금천군(錦川君)에 봉해졌다. 박강은 1446년(세종 28) 군기감정(軍器監正)에 임명된 후 세계 최초의 2단 발사체로 로켓형 화기(火器)인 대신기전(大神機箭)을 개발하여, 이듬해인 1447년 여진족을 토벌할 때 의주(義州)에서 사용되었다.

반남박씨 부윤공파의 예산군 대흥면 입향조는 박건의 아들 11세 박원(朴源, 자:仲遠, 軍資監判官)으로, 을사사화(乙巳士禍)의 피화(被禍)가 입향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박원의 묘소는 대야리 산2-13 백월산 아래에 조성되어 있다. 박원은 박종(朴琮, 자:彦器, 관:定略)과 박선(朴瑄, 자:汝珍, 관:直長) 두 아들을 두었는데, 이들의 후손들이 현재 대야·송지리에 세거하고 있다. 대흥 입향조 박원이 군자감판관(軍資監判官)을 지냈으므로, 그의 후손들이 ‘판관공파(判官公派)’라고도 일컫는다.

반남박씨가 세거해온 대야·송지리의 서쪽에 예당저수지가 위치하고 있다. 1962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예당저수지는 대야리와 송지리에 대대로 470여 년간 세거해왔던 반남박씨 문중에 큰 변화를 초래하였다.

해방 이후 구분되어 반사골고개를 중심으로 서로 등지고 있는 대야리와 송지리는 두 마을에 세거하던 반남박씨가 많을 때에는 150여호에 이르는 대규모의 동족 마을로, ‘대골박씨[큰 고을이라는 뜻]’ 또는 ‘대꼴박씨’로 불려졌었다.

그러나 예당저수지가 조성되어 생활 터전인 주택과 전답이 수몰되면서, 반남박씨의 상당수가 각지로 이주하여 현재 두 마을에 30여호만이 세거하고 있다. 마을의 규모가 축소되면서 2개 마을의 명칭도 1966년 통합되어 ‘송지·대야리’라 부르고, 또는 ‘대송리’라고도 부른다.

대야리의 중심 마을인 대골에 2007년에 2층으로 된 부윤공파재실(府尹公派齋室)을 건립하여 ‘예산재실(禮山齋室)’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부윤공 박훤의 위패를 모시고 은덕(恩德)을 기리며 성관(姓貫)에 대한 존엄성과 긍지를 간직하고 분묘(墳墓)를 수호하며 선조(先祖)를 봉양하고 있다.

 

경주부윤 박훤·배 정경부인 능성구씨 묘.
도정공 후 6위 재실 도정사 전경.

한편 대야리 산2-13 박원의 묘 앞에 8세 숭문 이하 12세까지 6위[崇文(敦寧府都正)-季老(丹陽郡守)-謇(利仁道察訪)-源(軍資監判官)-琮(定略)-瑄(直長)]의 위패를 모신 도정사(都正祠, 숭문이 돈녕부도정을 지냈으므로 붙여진 이름)를 건립하였다. 1994년 신속리에서 하탄방리에 이르는 도로확장사업 때 받은 종토(宗土) 보상을 재원으로 건립할 수 있었다. 매년 음력 10월 초9일에 제향을 올리고 있다.

곽호제 <충남도립대학교 교수> yes@yesm.kr

<저작권자 © 예산뉴스 무한정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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