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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사와 산신제

기사승인 2018.03.05  14:3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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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중한 예산말>

예산에서 산신제(山神祭)가 마지막까지 이어져온 곳은 대술면 궐곡리 산신제예요. 산신제는 마을의 풍요와 안녕, 주민의 화합을 이뤄온 마을 신앙이에요. 마을의 뒷산이나 큰 산에 산신당이나 산제당을 짓고 산신을 모시는 산신제는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행해져 왔어요.

민족의 삶과 어우러져온 산신제는 근대화와 산업화에 밀려 하나둘 사라졌어요. 일제강점기 때부터 축소되기 시작한 마을 신앙은 1960~70년대의 산업화에 밀려 단숨에 사라지고 말았지요. 산신제도 어느 순간 조국근대화와 산업화 사회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인식되고, 미신타파라는 미명 아래 마을을 수호하던 장승과 함께 뿌리가 뽑히지요. 이와 함께 화합하고 마음 나누는 전통의 공동체 사회는 한꺼번에 무너져 내려요. 1970년대 이후 산신제는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사라지고, 충남 지역에서는 청양 칠갑산 산신제와 대술면 궐곡리 산신제 정도만이 겨우 명맥을 보존했지요.

대술면 궐곡리 산신제는 해발 424m의 안락산에서 행해져요. 이 산신제는 수백 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오다가 1920년에 변화가 생기지요. 원래부터 써온 궐곡리의 안락산 산신 축문은 아주 짧고, 형식과 문장이 매끄럽지 못했어요. 이를 본 당시의 예산군수가 금오산 산신 축문을 궐곡리에 전해주었고, 이때부터 궐곡리 주민들은 안락산 산신 축문과 금오산 산신 축문을 함께 사용하였어요. 이후 유려한 문장의 금오산 산신 축문이 중시되었고, 이 축문을 사용하면서부터 마을 주민들은 안락산을 금오산으로 불러왔어요.

궐곡리 산신제의 두 번째 변화는 1982년에 일어나요. 그 이전에는 매년 10월 14일을 산신이 강림하는 날로 정하고 산신제를 지냈는데요. 80년대에는 전국에 산신제가 남아 있지 않던 때였어요. 궐곡리의 산신제도 조그맣게 축소되었고, 주변 사정에 맞춰 정월 열나흘로 산신제 날짜가 바뀌었지요. 이후 1993년경까지 이어졌는데, 이는 특별히 기록할 만큼 오래 지속된 것입니다.

우리 충청지역에서는 ‘산신제’를 ‘산신지’라고 하는데, 이는 유식한 양반들이 쓰는 말이고요. 보통은 ‘산지, 산지사’라고 불러요. 표준어 ‘제’는 충청도에서 ‘지’가 되지요. 그래서 ‘제를 올린다’는 ‘지를 올린다’가 되고, ‘제사를 모신다’는 ‘지사를 뫼신다’가 돼요.

“먹구 살기 심들 적이는 10월이 산지사를 지냈넌디 82년도버텀 정월 보름날루 바꿨어. 그러고 93년돈가? 그해 산지를 지내구 나선 사람덜이 나스덜 않히서 끊쳤지. 그맀다가 멫 년 전버터 전통문화를 살리자 히서 지끔은 다시 산지를 지내여.”

위 궐곡리 주민의 말처럼 요즘은 다시 산신제가 살아나고 있어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로 치닫는 현대 사회에 전통의 공동체 삶을 되살리는 차원이에요. 마을마다 동제가 살아나고, 예산의 금오산신제, 간양리산신제와 함께 궐곡리산신제도 부활했어요. 산신제가 미신이라는 부정한 이름이 아니라, 함께 삶을 나누는 소중한 이름으로 오래 이어지길 생각합니다.

※잊혀지고 사라져가는 예산말을 찾습니다. 주변에서 쓰고 듣는 예산말을 전해주시면 예산분들과 함께하는 소중한 우리들의 ‘ 예산말사전’이 되도록 꾸려갈 것입니다.
문자(010-2455-2343)나, 메일(ymj621014@hanmail.net) 주시면 참 고맙습니다.

이명재 <아카데미입시학원장, 시인> yes@yesm.kr

<저작권자 © 예산뉴스 무한정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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